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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와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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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우글로벌 댓글 0건 조회 437회 작성일 20-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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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                                                                                                                                                                                                                   

                                                                                                  최용현 (수필가)

  

   엇비슷한 실력으로 팽팽하게 맞선 두 사람을 흔히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라이벌(rival)은 적수, 경쟁자 등의 의미를 지닌 말로서 그 어원은 강에서 나왔는데, (river)의 양안(兩岸)에서 고기 낚는 경쟁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라이벌이라고 지칭한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의 시문학을 찬란히 개화시킨 발군의 시인으로 이백과 두보가 있었다. 이백은 시선(詩仙)으로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불리었다. 이백이 문재(文才)를 타고난 천부적인 시인이었다면, 두보는 피나는 노력으로 대성한 후천적인 시인이었다. 둘 다 거의 같은 시대를 살면서 우뚝 솟은 문명(文名)으로 후세에까지 뚜렷한 개성으로 대비되었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어깨를 겨룰 만한 상대가 있다는 건 어느 면에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다. 70년대 초반, 우리나라 가요계를 양분, 두 산맥을 이루었던 남진과 나훈아의 전성시대가 가요계의 황금기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오랫동안 야당을 이끌어 왔던 두 김씨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한 때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군인들이 서슬 퍼렇게 날뛰던 시절, 갖은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민주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이 상승작용을 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훌륭한 야당 지도자가 두 사람이나 있다는 사실이 암울했던 시절엔 행()이었으나, 둘 다 국가원수를 지내고 나서도 또다시 으르렁거렸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라이벌이란 승부가 날 수 없거나 나지 않는 경우에 적용되는 말이다. 승부가 나고 나면 이미 라이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승부가 난 대표적인 예가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두 사람의 승패와 성쇠,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 중원(中原)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인 두 사람의 격전은 초한지(楚漢誌)라는 소설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사람의 일진일퇴가 바로 우리가 즐겨하고 있는 장기(將棋)의 전형이 될 만큼 그 공방이 흥미진진했다.


   처음엔 항우의 위세가 워낙 강해서 유방의 실력으로는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세력을 만회, 그의 당당한 라이벌로 등장하게 된다.


   이 희대의 쟁패전에서 역사는 평민 출신 유방이, 귀족 출신 항우에게 이기는 것으로 심판을 내린다. 그러나 승리할 기회는 항우에게 더 있었다. 유방이 진나라의 근거지인 관중 땅을 먼저 점령, 차지하게 되자 화가 난 항우가 월등한 대군을 이끌고 유방을 토벌하려고 했다.

 

   그때 열세를 절감한 유방이 사죄를 했는데, 이때 항우의 참모 범증의 계책대로 유방을 죽이지 못했던 것이 그의 대표적인 실책이었다. 역사에서도 이를 홍문의 회()’라 하여 항우 편에서 보면 가장 아쉬운 대목의 하나이다.


   또, 두 사람의 각축전에서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명장 한신(韓信)이 원래 항우의 부하였으나, 그의 대기(大器)를 인정해 주지 않고 오히려 박대를 함으로써 결국 유방에게 뺏긴 것이 대세를 가름하는데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도 항우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이자 성격적 결함의 표출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다 결국 해하에서 포위당하고 만 항우,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전의를 상실하고 마는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바로 앞에 강이 있었고 배는 단 한 척밖에 없었다. 이 강을 건너가면 바로 그의 고향땅인데, 거기서 재기할 수도 있었을 법한데, 그는 끝내 굴욕감을 이기지 못해 무모한 죽음을 택하고 만다. 곁에 있던 애첩 우()와 애마를 바라보며 시 한 수를 남긴 채.


 

                     힘은 산을 뽑고

                     기력은 세상을 덮었으나

                     시운이 기울매

                     애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구나

                     우야 우야

                     아, 너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때 항우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그리하여 일개 떠돌이 협객에 불과했던 유방이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 집단을 이끌고 천하를 차지한 것이다. 한 고조로 즉위한 유방이 하루는 군신들을 모아놓고 나는 어찌하여 천하를 얻었으며 항우는 어찌하여 실패하였는가?’하고 물은 적이 있다.


   신하들이 여러 가지 대답을 했으나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략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장량에게 미치지 못하고, 군사를 징집하고 군량을 보급하는 데에는 소하에게 미치지 못하며, 대군을 통솔하는 데 있어서는 한신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 세 사람을 능히 다루어 썼지만, 항우는 단 한 사람의 참모인 범증 조차도 제대로 쓸 줄을 몰랐다. 이것이 내가 승리를 거둔 원인이니라.”


   그의 이 말은 후세 사가(史家)의 평가와도 그대로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호각을 이루는 두 세력이 각축을 벌일 때는 참모의 기량이 뛰어난 쪽이 이긴다고 한다. 여기서는 참모의 기량을 십분 발휘시켰느냐 않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려진 경우이리라.



   천하를 거머쥔 유방이 고향에서 잔치를 벌일 때 흥에 겨워 시 한 수를 읊었다.

     

                     대풍이 일어나니

                     구름은 날아오르도다

                     위()는 더하여 고향에 돌아왔노라

                     어디서 맹사(猛士)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하리


 

   해하에서의 항우의 시가 비통의 극에 달해 있다면 고향에서의 유방의 시는 호방한 기개가 한껏 드러나 있어 승자와 패자의 심사(心思)가 선명하게 대비되어 있다.


   유방의 승리가 돋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항우의 패배가 못내 아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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