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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未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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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우글로벌 댓글 0건 조회 522회 작성일 20-01-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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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未完)의 집                                                                                                                    수필작가 / 김애자

                                                                                                                                  

산촌에서 살면 말벗이 그립다. 거실을 화랑으로 꾸민 것은 말벗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 위해서다. 빈 벽이 없어 다소 협소해 보이기는 해도, 소장품 태반이 작가들에게 직접 선물로 받은 것이어서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의 혈점이나 다름없는 작품을 선선히 내준 것도 고맙고, 작품에서 슬몃 풍겨 나오는 개개인의 개성과 체취와 온기, 내지는 비장미(悲壯美)를 통해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된다.

특히 작품에서 느끼는 비장미란 예(藝)를 이루기 위해 사제처럼 살아온 그들의 삶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제단 앞에 새로운 제물을 올리려는 신성한 갈증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창작에 몰입하였을 터이다. 벽에 걸린 금강경은 한 서예가의 몸으로 전사(轉寫)한 것이다. 십수 년을 사바에서 부처의 세계로 도달하려는 수도승처럼, 붓 한 자루를 지팡이로 삼고 예도(藝道)를 닦아 오늘에 이르렀다. 화가인들 아니 그럴까. 이젤을 마주하고, 켄트지에 심상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칠하고 문지르는 작업으로 얼마나 육체를 혹사시켰겠는가. 온몸을 흥건히 적시는 땀의 결정체, 진액의 결정체에서 어찌 비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한때 화랑을 운영해 보고 싶었다. 시간만 나면 전시장을 기웃거리거나 인사동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80년대 초에 그것도 지방에서 화랑을 운영한다는 것은 가당찮은 생심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의 호사스러운 취미에 불과했을 때였으니 봉급쟁이 아낙으로선 당치도 않은 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당찮은 생심은 정신의 허기에서 기인된 일종의 치기였다. 그래도 한때 치기를 부리고 다녔던 것이 동기가 되어 적잖은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작품 중에서 눈길을 자주 보내는 것은 전축에 올라앉은 12호 크기의 ‘미완의 집’이다. 청주대학에 재직하고 있던 엄 교수가 충북미전에 초대작품으로 출품했던 것인데 그는 그림을 들고 와선 한마디 툭 던지고 갔다.

“두고 보면 괜찮을 겁니다.”

비구상에 가까운 이 그림은 곡선이 없는 일자형으로 된 집이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벽의 절반을 지붕이 차지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집의 본바탕은 연회색과 흰색 유화를 섞어서 문질러 놓았다. 게다가 지붕의 중심에 오브제로 붙여 놓은 기역자 모양의 나무쪽은 진한 회색을 거칠게 덧발라 놓았다. 아무리 보아도 색채와 조형요소는 다 빼놓은 일종의 은유와 상징만으로 표현되어 벽에다 걸어 놓기에는 좀 난해한 듯싶었다. 엄 교수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었지만 거실 바닥에 세워 놓는 것으로 대접해 주었다.

그 후로 이 그림은 있어도 없는 듯, 벽 밑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지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간 어느 날 아침이었다. 거실 바닥을 닦다가 그림 앞에서 지극히 절제된 선과 색채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꿈과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제서야 ‘두고 보면 괜찮을 것’이라던 엄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날로 ‘미완의 집’이라고 화제를 달아 놓고, 곧바로 전축 위로 올려 놓았다. 그 자리는 거실의 중심이라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특석이었다. 청빈한 당상관이 하루아침에 대사헌이 되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날이 갈수록 그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짓다가 만 허전한 공간에다 어떤 모양의 집을 지을 것인가를 구상해 보았다. 시원하게 트인 일자형에다 지붕이 서원처럼 진중하게 내려앉았으니 아무래도 한옥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심심하면 그림 앞에 앉아서 수수깡을 빗살로 엮어 벽을 만들고, 잘게 썬 짚을 황토에 섞어 성근 벽을 메워 나갔다. 지붕은 기와보다는 이엉을 엮어 얹으면 둥근 모양이 더 아늑할 것 같았고, 마루는 송진내 나는 적송을 켜서 깔면 쾌적할 듯싶었다. 문은 미닫이로 달고 덧문의 창살은 정자(井字)로 짜서 달기로 하였다. 상상으로 집 한 채를 짓다 보니, 마음 밑자리에 내재되어 있던 정서의 본질이 고개를 들었다. 흙에 대한 향수, 포근하고 아늑한 울림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수시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노상 남의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것 같던 도시 생활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는 것으로 채우던 정신의 허기가 다시 도졌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려 지병인 섬유조직염이 날로 악화되었다. 흙으로 돌아가야만 몸도 마음도 치유될 것 같아 산촌으로 들어갈 계획을 서둘렀다. 이곳 저곳을 물색하다가 친정 조카의 안내를 받고 찾아온 곳은 산의 등고선이 첩첩 주름잡힌 두메였다. 이런 두메산골로 들어온 후로는 헛헛증도 사라지고 늘 포만감으로 혼곤하다. ‘미완의 집’도 비로소 다시 미완인 채로 비워 두게 되었다.

요즈음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미완의 집’을 보면서 ‘밀로의 비너스’를 생각해 보곤 한다. 두 팔이 없어 탄력 있는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옷자락, 그 부끄러움을 거두어 올릴 손이 없어 여신의 천성(天性)을 지킬 수 있었다. 터질 듯한 젖가슴과 잘 익은 포도알 같은 젖꼭지, 아늑한 동굴을 연상시키는 깊은 배꼽과, 약간 비틀린 관능적인 몸매를 지니고도 여신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팔을 잃어서였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팔이란 욕심을 심부름하는 원죄에 속한 것”이질 않던가.

밀로의 비너스가 원죄를 심부름하는 팔을 제거한 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고 한다. 밀로의 섬에서 비너스가 발견되었을 당시, 이미 팔은 부러져 나가고 없었다는 것이다. 팔을 훼손당하므로, 사랑하고 번민하고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여성성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플러스적인 사고로 인하여 과감하게 아틀리에로 진출하여 수많은 화가들의 붓과 조각가들의 칼과 끌을 통해서 미술계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앞으로도 팔 없는 밀로의 여신은 데생의 모델로 그 자리를 고수할 것으로 여겨진다.

거실에 있는 저 ‘미완의 집’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회색빛 도시에서 창백한 얼굴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밀로의 비너스가 팔을 제거함으로 신화의 원형을 지킬 수 있었듯, 은유와 상징만으로 표현한 한 화가의 절제성을 통해 나는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미완(未完)’은 이렇게 완성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앞으로 집수리를 하게 되면 벽에 걸린 그림들을 모두 떼어 낼 생각이다. 이제는 산창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만으로도 고적함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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