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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방시혁 대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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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우글로벌 댓글 0건 조회 460회 작성일 19-06-0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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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방시혁 대표 이야기


 

명자는 하얀 피부에 자그마한 키,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좋은 인상을 주는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하루는 그 애가 시골에 있는 우리 집에 놀러왔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는 언니 앞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줄줄 외웠다. 명자가 돌아간 후에 나는 언니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명자는 오래된 교과서 내용도 잊지 않고 외울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너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명자는 공부를 잘 해서 그 어렵다는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을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명자는 책을 줄줄 외우던 아이로 통한다.

 

결혼 후 우연히 명자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었다. 그 애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 두 남매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근엄하신 어른을 모시느라고 명자의 얼굴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끊이질 않았다.

 

하루는 명자 집에 갔더니 당시 고교 1학년생인 아들이 엄마 친구 왔다고 기타를 연주를 해주었다. 그 아이는 기타에 푹 빠져있었다.

 

명자도 걱정이 되는지, 아들이 기타만 끼고 산다고 툴툴거렸다. 그래도 명자 아들이다. "가끔 전교 1등을 하느냐" 물었다. 기타가 아니었으면 '가끔'을 빼고 물었을 것이다. 명자는 그렇다고 했다.

 

아들의 대학 진학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었다. 기타를 끼고 살던 명자 아들이 어느 대학에 갔는지 몹시 궁금했다. 뒤에 들은 이야기다. 꼬장꼬장하신 할아버지께서 한 달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며 서울대 법대를 고집하셨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마지막까지 법대 진학을 종용하고.

 

판검사가 되는 게 흔히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서울대를 지원하면서도 법대를 외면하고 본인이 원하는 문리대 미학과를 선택했다.

 

나는 내심으로, 기타 때문에 공부가 좀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아들 손을 들어준 것은 엄마인 명자였다.

 

그 후에 아들은 대학시절부터 작곡으로 이름을 날렸다, 무엇보다 그런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요한 고비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신 엄마 덕분이라고 엄마에게 공을 돌렸다.

그 아들이 바로 방탄소년단을 만들어낸 방시혁 대표이다. 내 친구 명자가 바로 방 대표의 어머니다. 그러나 명자는 조용하게 겸손히 그 감동을 소화해 내고 있다. 역시 명자답다. 그런 아들을 둔 영광을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닐 것이다.

 

입시철이면 자식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환성과 한숨이 터져 나온다. 입시가 끝날 때까지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답은 확실하다. 진로선택에 있어 제 1순위는 본인이 가장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과다. 그 확실한 성과는 바로 오늘의 방시혁을 만들어낸 내 친구 명자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방시혁(房時爀, 1972년 생) 대한민국의 작곡가 겸 음반 제작자,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 본관은 남양

 

서울지방노동청장과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던 방극윤(房極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방시혁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여동생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그가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밴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다양한 악기가 가져다주는 생기 넘치는 소리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중학교 때 배운 기타로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방시혁은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했다.

 

1995년 남성듀오 체크의 인어 이야기로 작곡가에 데뷔를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열린 제6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1997년 박진영에 발탁되어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박진영 3집 수록곡 이별탈출을 시작으로 god ‘프라이데이 나이트’, ‘하늘색 풍선’, 박지윤 난 사랑에 빠졌죠’, 나쁜 남자’ ‘아이 두등을 작곡했다.

 

2005년 독립하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임정희, 에이트, 2AM, 방탄소년단 등의 음반을 제작했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2AM죽어도 못 보내’, 현대자동차 i-30 CM달라송등이 방시혁의 작품이다.

 

방시혁은 2011427일 모교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문화 포럼시리즈'의 강연자로 초청되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흥행'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200' 상위에 오르고 K팝 그룹 최초로 '2017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하면서 방탄소년단을 세계적 그룹으로 만들어 한류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125일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해외진출유공 문화교류공헌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8년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로 선정되었다 International Power Pl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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