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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천우글로벌 댓글 0건 조회 1,100회 작성일 14-10-17 16:29

본문

토마 피케티 (지은이) | 장경덕 (옮긴이) |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09-12 | 원제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4년)
양장본 | 820쪽 | 233*158m | 1270g | ISBN(13) : 9788967351274

<책소개>
전 세계에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드디어 출간한다. 지난해 8월에 프랑스, 올해 4월에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후 경제계는 물론 세계 지성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온 <21세기 자본>은 국내에서도 이미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동학에 대한 참신하고 실증적인 분석과 대담하고 파격적인 대안 제시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있다.

우선 경제적 불평등을 배태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소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자료를 들여다보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14~1945년에 급격히 떨어진 이후 다시 증가해 최근에는 19세기 수준의 턱 밑까지 도달했다. 1914~1945년에 잠시 상대적으로 평등이 높게 유지되었던 것은 단지 전후 복구를 위해 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유층의 상속된 부에 상당한 정도의 과세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목차>
제1부 소득과 자본 

제1장 소득과 생산
제2장 성장: 환상과 현실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제3장 자본의 변신
제4장 구유럽에서 신세계로
제5장 자본/소득 비율의 장기 추이
제6장 21세기 자본과 노동의 소득분배율

제3부 불평등의 구조

제7장 불평등과 집중: 예비적 고찰
제8장 두 개의 세계 
제9장 노동소득의 불평등
제10장 자본 소유의 불평등
제11장 장기적 관점에서 본 실력주의와 상속
제12장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

제13장 21세기의 사회적 국가
제14장 누진적 소득세에 대한 재고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제16장 공공부채의 문제

결론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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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밑줄긋기>
7
부의 분배는 오늘날 가장 널리 논의되고 또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관해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19세기에 카를 마르크스가 믿었던 것처럼 부와 권력이 필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손에 집중될 것인가? 아니면 20세기에 사이먼 쿠즈네츠가 생각했던 것처럼 더 발전된 단계에서는 성장, 경쟁, 기술적 진보에 따라 균형을 잡아가는 힘 덕분에 불평등이 줄어들고 계층 간의 조화로운 안정성이 확보될 것인가? 우리는 18세기 이후 부와 소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관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으며, 그로부터 21세기를 위해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나는 이 책에서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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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마르크스에게는 그의 예언들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통계자료가 부족했던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결론들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연구에 착수하기 전인 1848년에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점 때문에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대단한 정치적 열광의 풍토 속에서 글을 썼는데 이 때문에 때로 성급하게 지름길을 택해야 했으며, 이것이 훗날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경제 이론이 가능한 한 충실한 역사적 자료에 뿌리를 둘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이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그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이용했다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그는 어떤 사회의 민간자본이 완전히 폐지된 경우 어떻게 그 사회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별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민간자본이 폐지된 나라들이 수행했던 비극적인 전체주의 실험이 보여주듯이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될 경우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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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분배 문제는 중요하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소득불평등은 크게 증가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소득 집중도가 1910년대 수준으로-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되돌아갔다. 그러므로 불평등이 왜, 어떻게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었는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 최근 수십 년간 나타난 금융, 석유, 부동산 시장의 엄청난 불균형은 자연히 솔로와 쿠즈네츠가 이야기한 ‘균형성장 경로’의 필연성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에 따르면 모든 핵심적인 경제 변수들은 같은 속도로 움직일 것이다. 2050년이나 2100년의 세계는 상품과 금융 거래자들, 최고위 경영자들, 엄청난 거부들의 소유가 될까, 혹은 산유국이나 중국은행 손안에 들어갈까? 아니면 이런 주역들이 은신처로 찾는 조세피난처에 넘어갈까?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장기적으로는 성장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리라고 처음부터 가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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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141
자본은 다양한 형태-그 가운데 몇몇은 아주 '역동적'이다-로 고전소설에서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에서도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리오 영감은 면을 만드는 일로 시작해 파스타 제조와 곡물 거래로 큰돈을 벌었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시대에 그는 가장 좋은 곡물을 고르는 탁월한 안목과 완벽한 파스타 생산 기술이라는 재주를 갖고 있었고 유통망을 구축하며 창고를 짓고 적절한 제품을 적시에 적소로 공급할 수 있었다. 그는 기업가로서 큰돈을 번 뒤에야 자신의 지분을 파는데, 이는 21세기의 창업자가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자본이득을 챙기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고리오는 그 수익금을 더 안전한 자산, 영구히 이자를 지급해주는 국채에 투자했다. 이 자본 덕분에 그의 딸들은 훌륭한 집안에 시집가 파리 상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늙은 고리오는 딸 델핀과 아나스타시에게 버림받고 1821년 죽는 순간까지도, 오데사에서 수지맞는 파스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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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9~330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이 차지하는 몫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자. 불평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벨 에포크 시대와 비교하면 프랑스에서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소득의 몫은 20세기 동안 완전히 격감해 1900~1910년 국민소득의 20퍼센트 이상에서 2000~2010년에는 8~9퍼센트로 감소했다. 이는 한 세기 동안 절반 이상이 감소한 것인데, 국민소득에서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겨우 7퍼센트로 바닥에 이른 1980년대 초에는 사실 거의 3분의 2가 감소한 셈이다. (…) 20세기 프랑스에서 불평등의 감소는 주로 자본소득자의 몰락과 최상위 자본소득의 급감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바로 부의 분배의 역사적 동학이 주는 근본적인 교훈인데,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상황이 모든 선진국에서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인식하면 더욱 그러하다.(8장 두 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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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0
중요한 사실은 불평등의 역사가 길고 평온한 강처럼 흘러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역사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자연적’ 균형 상태를 향해 가는 거스를 수 없는 규칙적인 경향은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든 다른 국가에서든 불평등의 역사는 항상 혼란스럽고 정치적이었으며, 급격한 사회 변동의 영향을 받았고 경제적 요인들뿐만 아니라 무수한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 추동되어왔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사회집단 간의 소득과 부의 격차는―언제나 다른 영역들에서 전개되는 다른 발전들의 원인이자 결과다. 이런 분석의 모든 차원은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따라서 부의 분배의 역사는 한 국가의 역사를 더욱 전체적으로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8장 두 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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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0
오늘날 유럽에서 부의 집중이 벨 에포크 시대보다 두드러지게 낮은 현실은 주로 우연적인 사건들(1914~1945년에 일어난 충격들)과 자본 및 자본소득에 부과된 세금 같은 특정한 제도의 결과다. 그러한 제도들이 결국 무너진다면 부의 불평등이 과거 수준과 비슷해지고, 어떤 상황에서는 더 높아질 위험이 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평등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나는 상속의 동학을 살펴본 뒤 부의 세계적인 동학에 대해 더 자세히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가지 결론은 꽤 분명하다. 현대적 성장의 특징이나 시장경제 법칙과 같은 어떤 것이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안정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제10장 자본 소유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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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6~537
하버드대는 현재 자신의 기금을 운용하는 데 매년 거의 1억 달러를 사용한다. 이런 많은 금액이 전 세계에서 최상의 투자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춘 일류 자산운용자들에게 지불된다. 그러나 하버드대의 기금(약 300억 달러) 수준에서 보면 1억 달러의 관리 비용은 연 0.3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서 5퍼센트가 아닌 10퍼센트의 연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분명 매우 바람직한 거래다. 한편 기금이 1150만 달러인 노스아이오와 칼리지의 경우, 1퍼센트라 해도 11만5000달러인데 이는 현재 시장가격으로 보면 하프타임이나 쿼터타임으로 일하는 금융 고문에게나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다. 물론 부의 분배에서 중간층에 속하는 미국인은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고작 10만 달러 정도이므로, 스스로 돈을 관리하거나 기껏해야 매형의 충고에나 의지해야 한다. 물론 금융 자문이나 자산운용자가 항상 틀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익성이 좀더 좋은 투자 기회를 볼 줄 아는 그들의 능력이 최대 규모 기금이 최고의 수익률을 내는 주된 이유다. 이런 결과가 인상적인 것은 특히 초기의 대규모 기금이 어떻게 더 나은 수익률을 올리고 결국 자본수익률의 상당한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되는지를 분명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수익률은 미국 최고 일류 대학의 번영을 잘 설명해준다. 그들의 부흥은 졸업생들이 대학에 준 기부금 때문이 아니다.(12장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



<추천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blet_dropdown.gif 
: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역작인 『21세기 자본』은 올해, 아니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연구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피케티는 소득이 소수의 경제 엘리트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세습자본주의’로 다시 향하고 있고, 그곳에서는 부유층 안에서도 상속자들이 경제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드러낸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 blet_dropdown.gif 
: 피케티는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이론을 거부했고, 15년간의 공동작업과 실증연구를 통해 결과물을 얻어냈다. 그의 연구는 (그가 자본이라고 일컫는) 부와 소득이 지난 3세기에 걸쳐 고소득국가들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관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을 바꾸어놓았다. 
이코노미스트 blet_dropdown.gif 
: 피케티는 산처럼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단순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책이 근거로 삼는 데이터가 어마어마해서, 그가 제안하는 정책 권고에 동의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현대 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청하는 그의 제안을 문제삼기가 어렵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blet_dropdown.gif 
: 『21세기 자본』은 선진국에서 진행된 불평등의 역사에 대한 거의 완벽한 설명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내재된 동학에 관한 권위 있는 논문이다. 피케티는 글로벌 자본세의 필요성을 논하면서 책을 마친다. 그가 제안하는 해결책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 책은 자본주의를 스스로부터 지켜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난제를 던졌다. 
스티븐 펄스타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blet_dropdown.gif 
: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론과 수학적 모형이 대세가 되어버린 최근의 경제학계를 넘어서는 경제사의 쾌거이며 지적인 역작이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하버드 대학 교수) blet_dropdown.gif 
: 피케티는 완벽한 순간에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그리고 한 세대 이전의 폴 케네디처럼 정책 분야와 지성계의 록스타로 떠올랐다. 피케티의 실증연구는 정치담론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올리버 캄 (『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 blet_dropdown.gif 
: 피케티는 그의 야심작을 통해 진보진영의 관심과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정치적으로 편파적이지 않으며, 그러한 점이 그의 책이 놀랄 만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한 듯하다. 그의 논점은 이념이 아닌 증거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래서 강력하다. 피케티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3세기에 걸친 자료를 조사하였고,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한 세대 동안 확대된 역사적인 반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생산적인 상업활동을 영위한다는 이미지로부터 실제로 어떻게 벗어나는지에 대해, 피케티는 강력하고 현실적인 이해를 안겨준다. 최소한, 이 책은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낮은 세율과 작은 정부라는 허구적 관념을 효과적으로 벗겨낸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와 역사를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해 면밀히 분석하고
대담한 대안을 제시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역작인 『21세기 자본』은 올해, 아니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_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전 세계에 ‘피케티 현상’을 불러일으킨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지난해 8월에 프랑스, 올해 4월에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후 경제계는 물론 세계 지성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온 『21세기 자본』은 국내에서도 이미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동학에 대한 참신하고 실증적인 분석과 대담하고 파격적인 대안 제시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한국어판은 영어판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하버드대출판부)를 저본으로 삼되 원저작인 프랑스어판 Le Capital au XXIe si?cle(세이유)과 일일이 대조해 완역했다. 물론 영어판도 프랑스어판의 완역이다. 영어판과 프랑스어판 사이에 문장상 중요한 차이가 있거나, 영어판에서 누락된 내용이 있는 경우 프랑스어판을 따랐다. 이 과정에서 저자와 세이유, 하버드대출판부 모두의 동의와 허락을 받았음을 밝힌다.


토마 피케티,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는 누구인가? 한편에서는 불과 43세의 그를 마르크스와 같은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놓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꾸준히 그의 주장에 반박하며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존 주류 경제학계의 관심 밖에 있던 소득불평등 문제를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실증적으로 연구한 피케티의 연구 주제와 방법론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그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데에는 『21세기 자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는 ‘벼락스타’가 아니다. 피케티는 역사적이고 통계적인 접근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 연구에 천착해온 소장 경제학자로, 주로 경제성장이 소득과 부의 분배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한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작업을 다년간 수행해왔다. 특히 국민소득에서 최상위 소득의 비중이 장기간에 걸쳐 변화한 양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일련의 연구를 통해 그는 성장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낙관적으로 조망한 쿠즈네츠의 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고, 소득과 부의 분배의 역사적인 변화 추이에 있어 정치제도와 재정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책의 제목과 급진적으로 보이는 해결책 제시를 근거로 피케티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몰아세우지만, 정작 그 자신은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에는 관심이 없다고 이 책에서 밝힌다. 그는 단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제도 마련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기획을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렇듯 현실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그가 수학 공식에 매몰된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는 ‘경제과학economic science’이라는 표현보다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고백하면서, 경제학이 과거의 전통인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692쪽). 수학적 모형을 통한 순수한 이론적 고찰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과 해법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경제학이 사회적 쓸모를 다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피케티의 실용주의적 입장이 바로 ‘1 대 99의 사회’에 직면한 세계가 피케티에 열광하는 이유다.


인문학적인 경제학서의 탄생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으로 손꼽힌다. 경제학 책은 대개 전문적이고 복잡한 수학 공식으로 추상적인 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펴볼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그러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다르다. 간단한 수학 공식 3개만 이해하면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이론을 무난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학작품과 영화, 드라마 등이 자주 등장해 저자의 주장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오노레 드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자주 인용되는데, 이를테면 21세기의 부의 불평등 추세를 고전적 세습사회인 19세기 상황과 비교해 보여주는 대목에서 발자크 소설 『고리오 영감』의 한 장면을 불러온다. 법학을 공부해 출세하려는 가난한 시골 귀족 청년인 라스티냐크에게 냉소적 현실주의자 보트랭은 재능과 노력을 통해 좋은 직업을 얻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일갈한다. 거액의 유산 상속녀와 결혼해 최상위 1퍼센트의 자본소득자rentier가 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상속받은 재산에서 얻는 소득이 몇 곱절은 안락한 삶을 가져다주었던 발자크의 세계가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의 시대를 스케치하기 위해 소환된다. 문학작품이 적재적소에서 저자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흥미롭고 적절한 증거로 기능한다면, 그 좌표를 설정하는 것은 상당한 분량의 역사적 통계자료다. 이 책은 피케티의 말처럼 경제학 못지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다(47쪽). 그는 300년의 통계자료를 분석해 불평등의 변천을 시대별, 지역별로 보여줌과 동시에 시대와 지역을 통합해 나타낸다. 책의 뒷부분에 목록으로 정리한 도표와 표를 훑어보면 소득분배의 경향과 부의 불평등 추이를 일별할 수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 연구

현실 세계는 외면한 채 과학적 분석에 몰두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풍토를 피케티는 ‘유치한 열정’(46쪽)이라고 비판한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논리에 빠진 경제학자들이 무시해왔던 기본적인 통계자료를 성실히 수집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연구 방법을 택한 그는 부와 소득의 역사적인 동학dynamics을 이해하기 위해 무려 15년 동안 이매뉴얼 사에즈, 앤서니 앳킨슨 등의 경제학자들과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모아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이 책은 3세기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데이터를 토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본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실증 연구라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경제학 저서가 지향하는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피케티가 활용하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득의 분배와 그 불평등을 다루는 자료가 첫 번째요, 부의 분배 및 부와 소득의 관계를 다루는 자료가 두 번째다. 이 자료를 통해 부의 분배의 역사적 동학과 사회의 계층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자본수익률이 끊임없이 감소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19세기 마르크스의 예언과,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이 자본주의가 발전된 단계에서는 완화되고 안정될 것이라는 20세기 쿠즈네츠의 이론까지 논파한 뒤, 새로운 자본주의의 동학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실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 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불평등의 구조와 역사를 증명하는 3가지 공식

피케티는 불평등의 구조와 역사를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두 개의 간단한 수식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이라고 칭한 부등식을 통해 증명한다. 

* 이른바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은 α = r × β로 표현되는데, α는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r은 자본수익률, β는 자본/소득 비율(자본총량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5~6 사이를 오간다)을 뜻한다. 예를 들어 β가 600퍼센트이고 r이 5퍼센트면 α는 30퍼센트다. 다시 말해 국가의 부의 총량이 6년 동안 벌어들인 국민소득에 해당되고 연간 자본수익률이 5퍼센트라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은 30퍼센트인 셈이다. 피케티는 이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가 성장하면 자본수익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가설을 논파한다.

α = r × β 법칙에 따라 국민소득 및 전 세계 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에 대해 언급하자면, 경험적으로 볼 때 예측 가능한 자본/소득의 비율 상승이 반드시 자본수익률의 상당한 하락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에는 아주 장기적으로 다양한 용도가 있는데, 노동에 대한 자본의 장기적 대체탄력성이 아마 1보다 클 것이라는 관찰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수익률의 감소 폭이 자본/소득 비율의 증가 폭보다 작을 것이고, 따라서 자본의 몫이 상승하리라는 것이다. 자본/소득 비율이 국민소득의 약 7~8배이고 자본수익률이 4~5퍼센트인 경우 전 세계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30~40퍼센트가 될 수 있는데, 이는 18세기와 19세기에 관찰된 것과 비슷한 수치이며 심지어는 그보다 더 높게 상승할지도 모른다.
_ 281~282쪽,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인 β = s / g(s는 저축률을, g는 성장률을 뜻한다)는 저축을 많이 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대한 자본총량을 축적할 것이라는 분명하면서도 중요한 점을 반영하고 있다. 즉, 이 공식을 통해 저성장 사회에서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필연적으로 엄청난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성장률(g) 둔화는 높은 저축률(s)과 결합되어 장기적인 자본/소득 비율(β)을 구조적으로 상승시킨다. 피케티는 이 법칙을 이용해 1870~2100년 세계의 자본/소득 비율의 역사와 예측을 ‘U자 곡선’ 그래프(235쪽)로 나타낸다. 이 그래프는 자본주의가 발전된 단계에 접어들면 불평등의 정도가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한 쿠즈네츠의 ‘역U자형 곡선’이 사실과 다름을 역사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오히려 β = s / g 법칙은 세계의 자본/소득 비율이 계속 상승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700퍼센트에 도달함으로써 대략적으로 18세기부터 벨 에포크 시대까지 유럽에서 관찰되던 극심한 불평등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논리적인 예측을 제시한다.

* r > g는 피케티가 소득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도출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늘 높다는 이론,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자본 소유의 유무에 따라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r > g를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본다. 고대에서 17세기까지 연간 경제성장률은 사실상 제로인 0.1~0.2퍼센트였지만, 자본수익률은 적어도 연간 2~3퍼센트였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한 동력이 일천했으며, 인구 증가도 미미했던 오랜 기간 동안의 경제성장률이 제로에 수렴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수용 가능한 주장이다. 반면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토지수익률은 4~5퍼센트에 달했다. 따라서 피케티가 말하는 것처럼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자본수익률이 항상 생산(그리고 소득) 성장률보다 적어도 10~20배 높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423쪽). 최근의 추이를 살펴보면, 세계 경제가 연간 3.5~4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인 20세기 후반에는 이 둘의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는 차이가 다시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통계자료를 들여다보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14~1945년에 급격히 떨어진 이후 다시 증가해 최근에는 19세기 수준의 턱 밑까지 도달했다. 1914~1945년에 잠시 상대적으로 평등이 높게 유지되었던 것은 단지 전후 복구를 위해 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유층의 상속된 부에 상당한 정도의 과세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피케티의 분석이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양극화의 정도가 감소했던 이 시기의 해법은 부유층의 자본에 대한 과세였던 것이다.


대담한 대안, 글로벌 자본세

피케티의 대안은 대담하고 파격적이다. 최고소득에 매우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글로벌 자본세가 그것이다. 현재 30퍼센트대로 떨어진 세율을 노동 의욕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까지 높일 수 있을까? 피케티는 미국의 경우,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의 소득(약 5~10억 원)을 올리는 상위 0.5~1퍼센트의 소득계층에 80퍼센트의 세율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은 전 세계에 있는 부에 대해 매년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물론 피케티가 설계한 자본세의 세율은 최고소득세율과 마찬가지로, 자본축적의 동력을 유지시켜 성장률을 낮추지 않는 수준에서 책정된다. 그는 앞으로 세계 경제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글로벌 자본세가 가장 덜 위험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목도되는 각국의 보호주의와 자본통제의 움직임은 국제적 긴장을 심화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는 점진적으로, 지역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자본세라는 ‘이상’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먼저 유럽의 부유세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처럼 피케티의 해결책은 조세 개혁이다. 기업의 역동성과 국제적인 개방경제를 보호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 세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에 대한 누진적 과세는 부의 분배를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조세적 접근은 또한 부의 도덕적 위계에 대한 헛된 논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모든 재산은 부분적으로는 정당하지만 잠재적으로는 과도하다. 그 부가 완전히 도둑질의 결과인 경우는 드물며 절대적으로 능력에 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드물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의 이점은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방법인 동시에 대규모 재산을 민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경우가 이미 꽤 많이 있다.
_ 529쪽, 제12장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


소모적인 논쟁에서 생산적인 담론으로

이 책은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로 시작한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45쪽).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으로 부가 집중되는 메커니즘은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에 따라 삶과 사회가 좌우되도록 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피케티 스스로 인정하듯 그의 대안은 다소 이상적이다. 그러나 날로 심각해져가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기회비용을 염두에 둔다면 피케티의 제안에 관한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서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담론으로 옮아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마무리하는 피케티의 제언은 생각해볼 이유가 충분하다.

모든 사회과학자, 모든 저널리스트와 논평가,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가와 온갖 부류의 정치가, 특히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_ 697쪽, ‘결론’


책의 구성

이 책은 4부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소득과 자본’(1~2장)은 이 책의 기본 개념들을 소개한다. 국민소득, 자본, 자본/소득 비율 등의 개념을 제시하고, 세계적으로 소득과 생산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돌아본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인구와 생산 성장률이 어떤 변화 양상을 보였는지 상세히 분석한다.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3~6장)은 자본/소득 비율의 장기적인 변화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고, 21세기에 세계적으로 국민소득이 노동과 자본 사이에 어떻게 분배될지를 살펴보기 위한 예비적 단계다. 장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시작해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거쳐 전 세계의 역사적 데이터를 간추려 자본주의의 동학을 예측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수행한다.
제3부 ‘불평등의 구조’(7~12장)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따른 불평등의 수준을 개관한 뒤 역사적 데이터를 확보한 모든 나라에서 전개된 불평등의 역사적 동학을 분석한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상속재산의 중요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연구하고, 21세기 초 세계적인 부의 분배를 전망한다.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13~16장)는 규범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결론에 해당한다. 지금의 상황에 적합한 ‘사회적 국가’의 모습을 진단한 다음,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 대담한 대안을 유럽의 부유세, 중국의 자본통제, 각국의 보호주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제와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부채라는 절박한 문제를 다루면서 공공자본 축적의 최적 수준에 대해 생각해본다.


※ 피케티 현상 및 논쟁 총정리한 ‘정보지도’ 『피케티 패닉』도 9월 말 출간 ※

아울러 글항아리는 오는 9월 말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관련된 현상과 논쟁을 총정리하여 독자들에게 하나의 ‘정보지도’를 제공할 『피케티 패닉 - 『21세기 자본』을 둘러싼 전 세계 논쟁지도』(김동진 지음)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전 세계 자본 담론에서 어떠한 논쟁과 논의를 촉발시키고 심화시키는지, 그럼으로써 향후 자본 담론에 어떠한 기여를 해나갈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 전망한다. 불평등이라는 주제는 피케티 현상을 거치면서 경제적 사안을 넘어 민감함 사회·정치적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저서에 오류가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만 해도 불평등의 실증적인 추세가 논쟁거리였는데, 지금은 담론의 무게중심이 불평등의 추세는 인정하되 불평등을 자본과 연결지어 담론화하는 것이 타당한지로 바뀌고 있다. 피케티가 임의적으로 자본에 포함시킨 주택 자산의 가치 변화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의 자본/소득 비율의 증가를 80퍼센트 정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주택의 자산가치 변화는 자본축적의 결과나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체에서 발생되는 현상이 아니라 자산가치의 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동학이 작동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피케티 패닉』은 이런 담론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하듯이, 그러나 담론의 발전 단계부터 심도 있게 파헤친다.
강화되는 세습자본주의는 능력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므로, 따라서 이에 대해 최소한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는 피케티의 실제적 요구를 우리는 반박할 수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관련 자료에 대한 투명한 정보의 공개 요구는 자본 담론을 위해 필요한 권리장전의 성격을 지니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조율을 시도하는 이러한 알 권리에 대한 요구는 점차적으로 정치권에서 고려할 만한 의제로 인식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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