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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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못이 없고 네 탓이야 네 탓.”
요즘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한 것을 서로가 ‘오만의 극치’라고 말한다.
너무 잘나서 그러는지
아니면 진실로 부끄러움을 몰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너무 당당하게 자기의 잘못을 변호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상대방 보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돌아 볼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이 그가 살고 있는
집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기에
내가 ‘졸재(拙齎)’라고 지어주자 그 뜻을 물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졸拙은 교巧의 반대이다.
‘임기응변과 교묘한 짓을 잘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의 큰 병통이다.
남의 이욕을 즐겨 취하려고 하나
나는 부끄러워할 줄을 알아 의리를 지키는 것이 졸拙이요,
남을 속이기를 좋아하여 교묘한 것을 하나
나는 부끄러워할 줄을 알아 진실을 지키는 것이
역시 ‘졸’이니, 졸이란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취한다고 꼭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묘하게 한다고 꼭 되는 것도 아닌데,
정신만 날로 피폐해지게 되는 것이니,
어찌 나의 진실을 버리고 교모와 허위에 의존하여
이득만 구할 것이겠는가!
반면에 오직 의리대로 하여 진실을 지키는 사람은,
스스로 얻어 자신을 잃지 않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없어 편안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어 태연泰然하여지는 것이다.
이래서 ‘졸’한 사람은
처음에 부끄러워할 줄 앎으로써
마침내는 부끄러워 할 것이 없게 되어,
족히 호연浩然하게 스스로 존재하게 되고,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졸’을 기르는 것은
덕을 기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양촌 권근의《졸재기拙齎記》에 실린 글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고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도 없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없다. 그런데 뭘 그리 잃어버릴 것이 많다고,
행여 손해 보지 않을까,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많을까?
조금이라도 내놓을 것이 있으면, 목에 힘들어가고
목소리 높이고 대접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고 또 붉어진다.
당당하게 ‘졸’을 예찬한 옛 사람이 그립다. 34
출처 [가치 있게 나이 드는 연습] 신정일 지음
《후기》
유성 /박한곤
‘拙’ 자를 의미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아침!
임시방편으로 거짓말하는 이를 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한다.
그런 말하는 사람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지껄인다.
사랑과 의리마저
법 밑에 움츠려 듦을 개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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