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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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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우글로벌 댓글 0건 조회 731회 작성일 15-05-04 17:07

본문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은이) | 뜨인돌 | 2011-06-30

목차: 
머리말 4

제1장 관용의 마을
우리에겐 싫어할 이유가 충분한 이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 여우와 두루미 | 14
소년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 늑대와 양치기 소년 | 24
사람이 된 피노키오는 행복했을까 | 피노키오 | 37
튼튼한 집만 좋은 집일까 | 아기 돼지 삼형제 | 51

제2장 일탈의 마을
불공정한 규칙을 조롱하라 | 토끼와 거북이 | 64
우리는 샛길을 택한 이들에게 빚지고 산다 | 빨간 모자 소녀 | 79
거위의 배를 갈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황금알을 낳는 거위 | 89
분홍신을 탐한 것이 뭐 어때서 | 분홍신 | 103
한철 노래하며 사는 인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 개미와 베짱이 | 118

제3장 지혜의 마을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백설공주 | 134
왕비는 왜 자꾸 거울을 보았을까 | 백설공주 | 146
왕자는 왜 구두로 신데렐라를 찾았을까 | 신데렐라 | 157
이불 공주는 누가 깨울까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 170
그녀는 누구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는가 | 라푼젤 | 182
미녀는 왕자로 변한 야수를 사랑했을까 | 미녀와 야수 | 194

맺음말 204 





밑줄긋기: 

화해할 이유가 없는 사이끼리 강요된 화해는 나쁘다. 화해를 무조건 좋게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이좋을 이유가 없는 사이끼리 사이좋으라고 하는 것은 살짝 변장한 폭력이다. 
여우와 두루미가 꼭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가? 여우와 두루미가 왜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가? 그렇게 상대방이 먹을 밥그릇 모양새까지 머리 아프게 따져 보지 않아도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친구도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꼭 여우와 두루미가 친구가 되어야 할까? |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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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데 필요한 것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정해진 시각에 출근해서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산업 사회의 일터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이때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신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일생 동안 수천만 켤레의 신발 부속을 만들어 내지만, 어떤 사람도 살면서 수천만 켤레의 신발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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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그걸 내버려 두면서 게임의 규칙을 조롱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더 이상 이 판은 커지지 않을 것이다. |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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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빨간 모자더러 샛길로 새지 말고 큰길로 곧장 가라고 하는 것일까? … 결국 빨간 모자는 늑대를 물리쳤고 이제 누구든 마음 놓고 들판의 어느 길이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쁜 꽃이 유혹하면 꽃을 꺾으러 가도 되고 산딸기를 따고 싶으면 따러 가도 된다. 빨간 모자 덕분에 세상은 사방팔방으로 길을 내며 우리를 맞게 되었다. |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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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줄 수 있는 행복도 있는 법이니 결핍이 부족한 삶도 일종의 결핍이다. 치명적인 결핍이다. |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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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충분한 돈을 벌었다면 몇 년 내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 재테크 책을 쓰느라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짜 성공한 사람의 책은 재테크 코너에 없다. 그러니 발걸음을 돌려 인문학이나 철학, 사회과학 코너로 가 보시라. 이런 책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존재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가르쳐 주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없어서 행복한 삶의 길을 제시한다. |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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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이런저런 ‘분홍신’들을 금지하는 데 그토록 열을 올리는 것일까? 첫째, 부당한 규제에도 묵묵히 따르는 순종적인 인간을 키워 내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이 학교에 바라는 것이라면, 학교는 복장 규제를 통해 세상의 요구에 답하고 있다. 부당한 규제를 별다른 불만 없이, 혹은 불만이 있더라도 속으로 삭이며 참고 견디도록 길들여진 아이는 자라서 기업의 부당한 방침에도 묵묵히 일만 하는 노동자로 최적화될 것이다. 이때 규제가 부당한 것일수록, 그리고 강제하는 방식이 억압적일수록 효과는 더 커진다. |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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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폐를 끼치고 누군가에게는 은혜를 베풀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개미와 베짱이도 서로에게 폐도 끼치고 은혜도 입으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이 살 만한 곳이 되려면 한철 노래하며 사는 인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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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갖되 좋은 관계에 대한 상상력도 함께 회복하는 일, 그것이 외로움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 함께 나누어 좋을 이야기, 함께해서 좋을 일들을 맘껏 상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좋은 관계 맺기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밥을 나누어 먹는 상상력, 근심을 나누고 덜어 주는 상상력, 영혼의 허기를 함께 채워 나가는 상상력. |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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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한계와 모순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인데, 그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불완전성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단계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 154쪽 








당신을 미심쩍은 일들로 가득 찬 동화 속 마을로 초대한다 

동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 무슨 수로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분홍신을 신고 춤추던 소녀는 끔찍하게 생을 마감했고, 피노키오는 학교를 거부한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한 벌을 받는다. 그뿐인가. 「미녀와 야수」의 미녀 같은 지극한 효녀 주인공들은 도대체 자기 살자고 자식을 사지로 내몬 부모를 어떻게 다시 볼지 궁금하다. 
왜 동화 작가들은 주인공들을 이토록 고생시키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려 했을까? 답은 이미 안다. 재미와 교훈을 얻으라고. 그런데 과연 거기에서 얻은 교훈은 공평무사하기만 할까? 동화를 통해 만들어진 규범은 좋은 세상에 기여했을까? 다음 세대에 의심할 바 없이 전수해 줄 정도로 좋은 가치를 담고 있기는 한가? 동화의 미심쩍은 부분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관계와 연대를 상상하는 사회학 에세이『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하『백설공주』)가 출간되었다. 

하지 말라는 짓을 계속해서 연거푸 곤경에 빠지는 백설공주, 너무 멍청하지 않느냐고 묻는 독자, 참 많다. 몇몇 부모는 아이가 자꾸 그런 질문을 하는 통에 명작 동화라 불리는 책은 읽어 주지 않는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백설공주가 정말 멍청해서 그랬을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곱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 하나 없이 하루 종일 갇혀 살면서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세상에는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 백설공주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계속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백설공주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주었으며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또 열어 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에 빗대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결핍, 관계의 부족, 상상과 일탈, 연대, 우정 등을 이야기한다. 
미심쩍은 동화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어린 시절 품고 있었어도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과 신선한 해석은 관용의 마을, 일탈의 마을, 지혜의 마을에 사는 주인공들에게로 이어진다. 

멍청한 주인공들이 사는 세 개의 마을을 소개한다 

첫 번째 관용의 마을에는 ‘어른’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거나 가르침대로 했는데도 곤경에 처한 주인공들이 산다. 「여우와 두루미」의 여우, 거짓말을 계속한 양치기 소년, 학교 가기를 거부한 피노키오, 대충대충 집을 지었다는 누명(?)을 쓴 「아기 돼지 삼형제」의 두 형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전형적인 동화 속 사고뭉치들이지만 저자는 건강한 의심의 시선으로 말 없는 이들을 변호한다.
두 번째 일탈의 마을에는 규범을 벗어던진 이들이 산다. 게임 도중에 잠을 잠으로써 불공정한 규칙에서 빠져나온 토끼와 토끼의 일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거북이, 끊임없이 딴 길로 새는 바람에 사람들이 숲 속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해준 빨간 모자 소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제 손으로 죽여 버린 농부, 금기를 넘어 분홍신을 신고 춤추다가 쓰러지기를 택한 소녀가 있다. 저자는 이들이 ‘물론’의 세계에서 벌인 일탈 덕분에 우리의 선택지가 다양해졌다고 믿는다.
세 번째 지혜의 마을에는 관계 맺는 데 서툴러 불행한 공주와 왕비가 산다. 답답하게도 자꾸 왕비에게 문을 열어 준 백설공주, 주구장창 왕자만 기다린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기껏 잘 기른 머리카락을 왕자에게 바친 라푼젤, 거울하고만 얘기하다가 불행해진 백설공주의 새 엄마 등이 사는 마을이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좋은 관계, 우정과 연대가 삶에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는지를 배운다. 

교훈이라고 쓰고 나쁜 교육이라 읽는다 

동화의 목적은 처음 씌어질 때부터 교훈과 재미를 주는 것, 곧 도덕적 교훈과 사회적 구속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동화의 정체』(잭 자이프스, 문학동네, 1999, 26쪽)

동화에 동심만 담긴 것은 아니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강제 규범을 확립하는 데 동화가 깊이 관여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명작 동화에 의해 사회화되었다.「개미와 베짱이」에서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 것, 「빨간 모자 소녀」에서는 금지된 길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 「토끼와 거북이」에서는 느리더라도 성실히 갈 것 등을 배웠다. 그런데 해석권은 언제나 교과서, 아니면 어른이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교훈을 이식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어른으로 자란 우리로 하여금 획일화된 구조, 부조리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 않았을까. 『백설공주』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들로부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침을 이끌어 낸다. ‘올드독’으로 유명한 정우열 작가의 카툰은 덤이다. 

#1 피노키오는 산업사회에 필요한 일꾼을 효과적으로 획일화하기 위해 씌어졌다 

“… 꼭두각시 나무 인형이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피노키오가 착한 아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착한 아이일까? 이 이야기 속에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부모님 말을 잘 들을 것. 둘째, 학교를 잘 다닐 것. 그런데 부모님이 착한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학교를 잘 다니는 것이므로 착한 아이의 비결은 하나로 압축된다. 학교를 잘 다니면 되는 것이다. 
카를로 콜로디가『피노키오』를 발표한 19세기 말은 근대적인 학교가 성립되고 확대되던 시기였다. 산업 혁명으로 사회가 밑바닥부터 재편되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이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농사일은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하면서 전수되지만, 공장 일은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없었다. 공장주들은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기를 할 수 있는 일꾼들을 원했다. 노동자의 자녀에게 읽고 쓰고 셈하기를 가르쳐 내일의 노동자로 준비시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에 따라 생겨난 것이 근대적인 학교였던 것이다. 
… 합리성을 강조하고 표준화를 추구하는 일은 장차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일하게 될 직장에서도 꼭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에 학교를 통해 교육을 제도화하는 일을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본문 <사람이 된 피노키오는 행복했을까? - 피노키오> 중에서

#2 토끼와 거북이는 불공평한 규칙을 문제 삼는 대신, 모든 게 노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왜 토끼는 그 경주에 참여했을까? 토끼의 입장에서 거북이와의 달리기 경주를 생각해 보자. 토끼는 빠르다. 빠른 것은 토끼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토끼의 자부심의 근원이다. 그런 토끼가 느리기로 유명한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한다. …토끼에게 이 게임은 이겨도 얻을 것은 없으되 지면 망신살만 뻗치는, 정말 하등 득이 될 것 없는 게임일 뿐인 것이다. …나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제3자가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게임을 통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보았을까? 당연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만들어 낸 누군지 모를 제3자이겠지. 승부가 어떻게 갈리건 항상 이익을 보는 이는 따로 있다. 이것이 불변하는 ‘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다시 토끼와 거북이를 본다. 게임 중간에 편안히 낮잠을 즐기는 토끼를 보라. 그 여유는 깨달은 자의 것이다. 이기건 지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 자의 여유. 하지만 더 멋진 쪽은 거북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이는 호들갑스럽게 토끼를 깨울 수도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렇게 한가하게 낮잠을 자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낮잠을 즐기는 토끼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 이해심은 게임의 구조를 완전히 이해한 자의 것이다. 
… 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그걸 내버려 두면서 게임의 규칙을 조롱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더 이상 이 판은 커지지 않을 것이다.
본문 <불공정한 규칙을 조롱하라 - 토끼와 거북이> 중에서 

#3 여우와 두루미는 갈등의 배경을 묻는 대신 일단 화해부터 하라고 한다 

대립하는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도 동화는 명쾌하기만 한 해법을 내놓는다. 「여우와 두루미」에서 배우지 않았나.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고, 화해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그러나 세상에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일단 악수부터 하라는 억지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이들은 사이좋게 지낼 이유가 없다. 폭력이 가져오는 나쁜 결말을 충분히 숙지하고 앞으로 폭력에 의존해서 문제를 풀지 않을 것을 마음에 새기는 일과 화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는 싫어할 이유가 충분한 누군가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화해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계속해서 문제를 유발한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욕망인가. 또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은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가.”
본문 <우리에겐 싫어할 이유가 충분한 이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 여우와 두루미> 중에서

왜냐고 묻는 감수성이 희박해진 시대 
세상은‘왜’냐고 묻는 이들을 불편해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규범에 갇혀 있는데 거기에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지배자의 논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답이 궁색할 수밖에 없으니 세상은 잔말 말고 정해진 길로만 잘 가라고 한다. 저자는 학교 안팎에서 이런 일을 종종 목격한다. 학생의 머리나 치마 길이 단속은 어떤가. 슬리퍼를 신지 못하게 하고 하루 중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을 얼마 주지 않는 것은 정당한가? 저자는 동화 「분홍신」에서 분홍신이란 ‘금기’의 총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든 온갖 생활 규범, 즉 분홍신을 금지하는 것이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또한 생물적인 필요가 뒤섞여 만들어진 문화의 힘”이라고 본다. 그리고 탄식한다. “정말 학교에는 교육도 아니면서 교육인 척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엄마가 신신당부를 했는데도(사회가 강력하게 제지했는데도) 샛길로 샌(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딛은) 세상의 모든 빨간 모자들에게 우리는 빚지고 산다. 그 덕분에 세상은 사방팔방으로 길을 내며 우리를 맞게 되었으니…. “우리가 언제 민주주의 해본 적 있느냐고 체념할 때 독재에 저항해 거리로 나갔던 사람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듯이 말이다. 
이 시대는‘왜?’냐고 묻는 감수성이 희박해진 시대,‘왜?'냐고 묻는 이를 억압한다. 저자는 굳이 ‘왜’냐고 물으면서 남들이 가는 쉬운 길을 포기한 이들, 일방적인 가르침에 저항하는 이들,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밝은 데로 이끄는 이들에게 우정을 나누고 연대하자는 뜻을 담아 이 책을 썼다. 




출처: 알라딘(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07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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