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 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온 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과 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에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 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 안도현, <삶의 비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