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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즈니스 인사이트]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이 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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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우글로벌 댓글 0건 조회 464회 작성일 18-11-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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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즈니스 인사이트]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이 주는 메시지


얼마 전 베이징에 들렀다. 톈안먼 광장 동쪽에 있는 국가박물관이 한참을 단장을 하고 있었다. 속이 궁금했다. 그 의문이 11월 14일에 풀렸다. 이날 시진핑 등 중국 상무위원 대부분이 참석한 채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전시회가 개막했기 때문이다.

기념 전시회를 이날 개막한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의 시점을 1978년 11월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기로 한번 돌아가 보자.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중국은 또 다른 변화 속에 빠진다. 마오가 밀었던 후계자 화궈펑()은 양약진(洋)이나 양개범시(凡是)를 내세운다 양약진은 중국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서양의 자금과 기술을 도입하자는 입장이었고, 양개범시는 마오가 작성한 정책이나 지시는 시종 변함없이 따른다는 주의였다. 결국 모순들로 가득 찬 정책은 지지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원로들은 화궈펑보다는 오뚜기 덩샤오핑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중국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3차회의(第十一中央委第三次全)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주석은 물론 화궈펑이었다. 하지만 부주석인 예젠잉(英), 덩샤오핑, 리셴녠(李先念), 왕둥싱(汪)은 묘하게 느낌이 갈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 회의에서 개혁개방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정책으로 채택됐다. 개혁개방은 덩샤오핑에게 어울리는 단어였고, 이후 급격한 속도로 힘은 덩샤오핑에게 쏠린다.

덩샤오핑이 주도하는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지역은 중국 선전(深)이다. 홍콩과 맞닿은 선전은 인구 10만 명도 되지 않은 작은 어촌이었다. 당시 홍콩으로 건너가려는 중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멀지 않은 바다에서 목숨을 잃어야 하는 안타까운 땅이었다.

선전이 개혁개방의 중심지로 부각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 주석인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이 1978년 3월에 광둥성에 부임해, 곧바로 1서기가 되고, 다음해에는 광동성 성장이 된다. 1979년 7월에 중앙은 선전과 주하이, 산토우, 샤먼을 특구로 만들기로 결정하니, 이미 덩샤오핑이랑 합을 맞춘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은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건으로 위기에 빠진다. 덩샤오핑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2년 1월말 선전을 기점으로 시작한 남순강화(南巡)를 통해 다시 한 번 변화의 시기를 맞고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다.

필자는 1999년 처음 선전을 방문했다. 이미 왕복 10차선이 넘는 선남대도나 화려한 주택들로 상서로운 도시였다. 하지만 지하철이 활성화되지 않아 뭔가 빠진 듯한 도시 같았다. 이후 1년에 한 번 꼴로 선전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 사이 도시는 완전히 형태를 갖추었다. 이미 8개 노선의 지하철이 도시를 연결하고, 이 노선은 수년 내로 11개 노선으로 확대된다. 도시 상주인구도 이미 1250만 명을 넘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덩샤오핑의 동상이 있는 롄화산 위에서 시내를 보면 이미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변모한 선전을 볼 수 있다.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패션도 이제 서울과 다름없다.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세계 최대 게임회사 텐센트, 세계 1위 전기차 판매기업 비야디, 세계 드론 시장의 69%를 장악한 DJI 등도 선전에 본사가 있다.

자오쯔양이 낙마하면서 덩샤오핑의 바톤을 이어받은 장쩌민을 상징하는 도시는 상하이 푸동이다. 장쩌민은 정치적 고향인 상하이, 지앙쑤, 저지앙을 상징하는 창지앙 벨트를 본격적으로 육성했다. 푸동은 물론이고 쑤저우, 항저우 등의 도시는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태상왕 장쩌민으로 힘을 쓰지 못했지만 후진타오는 징진지로 불리는 베이징, 톈진, 허베이를 집중 육성했다. 톈진 빈하이 신구는 푸동을 능가하는 수치를 가진 도시로 발전했다. 

시진핑도 이 개혁개방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는 한국, 일본, 미국의 봉쇄로 틈이 좁아진 동쪽에 매몰되지 않고, 육로와 해로로 인도, 중동,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일대일로’라는 철학을 만들었다. 물론 시안이나 청두, 쿤밍 같은 기존에 밀렸던 지역이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의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라는 난제를 만났다. 중국을 키운 수출은 물론이고 문화산업 등을 향해 집중적인 화살들이 날아오고 있다, 내부적으로 갈등인 지방재정의 약화나 기존 부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진민퇴(국유기업은 전진, 민영기업은 퇴보)도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대적으로 열린 상하이 수입박람회를 보면 이제 중국이 대외문제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출이 아닌 수입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동력을 삼는다. 기존에 미국의 우방인 일본을 더 가깝게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전략적 무서움도 느낀다.

14일 개막한 개혁개방 40주년 전시회에 가면 이런 중국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전시회를 소개하는 기사에는 안후이성 샤오깡촌(小村) 농민 18명이 손도장을 찍어서 사유재의 실험을 시작하는 장면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또 장청(征) 계열의 우주로켓이나 2026년에 완성되는 우주정거장 톈궁(天) 모형 등이 전시된다. 2025년에 수명을 다하는 국제우주정거장을 대신할 중국의 우주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도 당연하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한국에게도 큰 영향과 변화를 주었다. 우선 1992년 수교를 통해 우리나라는 중국이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톈진이나 칭다오, 옌타이, 웨이하이 지역이 수출하는 비중에서 한국기업이 차지하는 부분은 절반 이상인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10% 이하로 줄어들고, 그 자리는 중국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 경제의 생존 문제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100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병법의 기초를 상기하는 일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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